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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2015)​

이 작업은 사후 세계에 대한 엉뚱한 상상에서 비롯됐다. 내가 상상하는 사후 세계는 가벼운 신비의 놀이터다. 그곳에서는 모든 사물이 손 안의 친근한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유쾌함과 명랑함을 유발하는 낯선 쓰임을 가지고 등장한다. 이 신비한 놀이터에는 관광객이나 술주정뱅이 같은 엉뚱한 존재들이 어슬렁거린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잃는다.

2015년 여름, 나는 작업실 근처에 묶여 2m의 삶을 사는 공장의 개들과 매일 산책을 다녔다. 마치 고고학자가 된 것처럼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개들과 진지하게 땅을 파고, 발견한 사물들을 관찰했다. 사물의 효용성에 무심한 채 그 효용성을 제외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집중했다. 나는 기능이 퇴화한 사물을 붙잡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었다. 작업을 진행하며 이러한 행위들은 나에게 커다란 유혹이자 동시에 위험이라고 생각했다. 삽질을 한다는 것은 이미지를 열어젖히는 행위인 동시에 메우는 행위다. 이제는 이미지를 기능으로 수단화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점에서 저 유혹과 불안에 더 직접적으로 노출되었다.

삽 대 인간, 누가 묻힐 것인가.


This series began with my curiosity about the afterlife. The afterworld that I imagine is a mysterious playground. Things that are found here are not familiar tools we are used to, but ones with a peculiar purpose of generating cheerfulness and gaiety. In this mystical place out-of-place people, like tourists or drunkards, saunter around. Here all things lose themselves.

It began with the purchase of a shovel. After Work, I came back to my studio, picked up the shovel, and walked around the vicinity of my studio with my dog. And, as though I was an archaeologist, I dug up earth in all earnestness and observed the objects on the table that I had unearthed. One could find such items as Styrofoam, computer parts, cans, and other miscellaneous things from under the earth of a residential neighborhood. Indifferent, and dismissing the usefulness of these things, I concentrated on exploring other possibilities. I wished to discover something else in these objects that had lost their utility. As I went on working, this approach felt quite appealing but at the same time risky. Shoveling was not only an act of uncovering an image but of entombing it as well. By confronting the images directly, rather than utilizing them as a means, I now subjected myself even more to the temptation and the threat.

Shovel versus human—who will be buried?

<고고학>,5분 5초, 비디오 도큐멘테이션,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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